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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2

우리 사회에서 기본사회의 기원과 헌법

우리는 처음부터 사회권을 보장하는데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헌법 제정당시 여러 기록을 살펴보면, 서구의 사회국가 원리를 받아들여 우리 헌법에 반영하고자 했다. 사회국가란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해, 국가가 개인의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적극적 조치를 취하는 국가를 말한다. 


이러한 정의 때문에 사회국가와 복지국가를 동일시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다르다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쨌든 대한민국을 설계할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도 국민의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믿었다는 사실이다. 아래와 같은 언급은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 (제헌) 헌법은 국민의 균등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특히 노력했으며, 이를 위해 여러 규정을 설치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헌법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즉, 우리나라 헌법은 다른 민주국가와 같이 정치적, 법률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고자 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실질적으로도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고자 한 것이다. - 유진오. 1949. 헌법해의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교육환경이 부실했던 이유는 식민통치와 전란을 겪은 폐허 위에 가난한 나라로 시작하다 보니 당장 모든 것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기본을 못하니 최소만이라도 하자'라는 생각에서 기본적인 것들은 어렵고, 최소한만을 보장했다. 그래서 광복 이후 수립된 제헌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적어도' 초등교육은 의무적이며 무상으로 한다"라고 했다.


왜 '적어도'라고 했을까?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중·고등교육까지 국가가  보장하고, 교육에 필요한 물품의 비용도 모두 국가가 부담하자고 주장한 의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제헌의원들은 국가에 돈이 없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반대했다. 결국 타협안으로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나중에 나라가 잘살게 되면 그때에는 꼭 잘 보장해 주자는 의미에서 '적어도'라는 낱말을 넣게 되었다.


그 결과 제헌 헌법에 들어갔던 '적어도'라는 단어가, 현재의 헌법에도 남아있는 것이다. 헌법 조문안에 스쳐 지나가는 한 단어이지만, 그 의미를 곱씹어보면 참으로 안타까웠던 당시 나라의 실정이 녹아들어 있다. 교육뿐만이 아니다. 국가가 보장해야 할 많은 국민의 권리가 나라가 가난해서 보장되지 못했다. 점차 나라가 잘살게되며 국민 생활이 윤택해졌지만, 여전히 기본적인 생계가 보장되지 않은 사람이 많았고, 주거와 교육, 의료의 많은 부분을 국민 각자의 사비로 해열했다.


그러다보니 집 가격이 안정적으로 관리되지 않고 널뛰며, 사교육이 횡행해 돈이 많을수록 더 좋은, 더 많은 교육을 받게되었다. 단순히 경제적 부의 격차만 커진 것이 아니라, 국민 각자가 보장받는 자유와 권리, 삶의 수준에까지 격차가 생긴 것이다. 우리의 경제발전과 성공은 사회적 자원을 경제적 성장을 위한 부분과 기본적 삶의 보장을 위한 안전망 구축에 나눠쓰지 않고 오로지 성장에만 몰아서 투입한 결과로, 참으로 이상한 성공이 되었다. 


요컨대, 기본사회는 우리 헌법에 내재한 기본 정신인 "모든 국민의 모든 권리를 최대한으로 보장해 실전적 자유를 실현한다"라는 것을 구현하는 사회운영 원리이다. 그간 국가가 여유롭지 못해 최소한으로 여기던 사회적 권리를 적극 보장해 국민의 실질적 자유가 평등하게 보장되도록 하는 사회이다. 모든 국민의 모든 기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여,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하는 사회이다. 그렇기에 기본사회는 '기본권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혁신적 사회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사회의 네 가지 가치


이런 기본사회가 운영되려면,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그중 첫 번째 원칙은 공정으로써의 정의이다. 앞서 기본사회란 '모든 국민의 모든 권리를 최대한으로 보장해, 모든 국민의 기본적 삶을 보장함으로써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하고 실질적 자유를 달성하는 사회'라고 했다.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하라면 정의의 원칙이 가장 중요하다. 공정과 정의란 무엇일까? 이는 우리 사회가 가장 목말라 있는 가치이기도 하다. 


혹 대법원에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법원에는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정의의 여신인 유스티티아(Justitia) 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해 한복을 입고 있다. 대법원의 여신상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때 같은 점과 다른 점이 있다. 같은 점은 `저울`이다. 저울은 무게를 달아 균형을 유지하는 물건인데, 서로 다른 이해관계나 상충되는 권리를 대등하게 고려하여 치우치지 않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바꿔 설명하면 정의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반면 다른 점은 `안대`이다. 우리의 여신은 안대를 쓰지않고 있다. 여신상이 안대를 쓴다고 갑자기 정의로운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안대`는 사사로운 일이나 다른 외적인 것에 현혹되지 않고, '모두에게 공정하게' 사안을 판단하다는 의미이다. 공정한 판결이란 개인의 특수한 지위나 상황을 부당하게 참작하거나, 인맥이나 배경을 살펴보지 않고 판단하는 것이다.


즉 공정으로써 정의란 '모두에게 같은 기회로', '편견없이 바라보는 것'인데 이는 곧 롤즈(John Ralws)가 말한 정의의 원칙과도 같다. 롤즈는 사회가 정의로우면 모두가 동일하게 권리의 충돌이 있지 않은 한 최대한의 기본적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했다. 기를 정의의 첫 번째 전재인 '평등한 자유의 원칙'이라 한다. 


두 번째로, 사회가 공정하기 위한 규칙을 모여서 정한다고 상상해보자. 각자 자신의 차지를 알 수 없게 '눈을 가리고', 모두가 납득할만한 분배의 규칙을 설정하려 한다면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신의 유불리를 알 수 없다. 그래서 가장 최악의 상황일 때를 대비해, 최약자도 이익이 되는 원칙을 만든 것이다. 이를 '차등 원칙'이라 한다.


정의 원칙은 불평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기회의 불평들에서 비롯되어서는 안된다. 각자의 노력에 따른 결과의 불평등만이 용인된다. 정의로운 사회는 저울에 단듯 모두에게 동일한 자유가 보장되고, 안대로 가려 편견없는 상황에서 가장 약한 사람조차 이익이 있어야 한다. 이는 곧 기본사회가 지향하는 정의 원칙이다. 모든 국민의 기본적 권리와 삶을 보장해 같은 출발선에 서게하는 것, 같은 출발점에서 경쟁한 길과에 승복하는 것이 기본사회이다.


공정으로써의 정의가 기본사회를 구현하는 원칙이라면, 심화된 민주주의는 기본사회가 운영되기 위한 정치 질서이다. 이번 12.3 불법계엄으로 분명해졌지만, 민주주의는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정치 체제이다. 오로지 국민이 주인일 때만이 주권자 스스로의 권리를 정하고 보장받을 수 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만약 계엄이 성공했다면, 우리의 전반적인 삶이 억압받았을 것은 자명하다.


헌법 첫머리를 유심히 보면, 전문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 ."으로 시작해 ". . .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라고 끝난다. 그 후 총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등장한다. 즉, '법(憲)의 법(法)', 우리 모든 법의 기초이자 우리의 모든 권리를 명시한 헌법을 만드는 주체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대한국민`인 우리이다. 국민이 헌법을 만듦으로써 대한민국이 정의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에서만이 국민이 보장받을 기본권을 스스로 정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군부독재 시기에도 헌법전문에 헌법을 만드는 주체는 `대한국민`이라 했지만, 실제로는 군부정권이 나라를 통치했기에 국민의 기본권이 억압되었다. 12.3 불법계엄을 통해서도, 우리는 민주주의가 선언이 아닌 일상의 실천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절감했다.


물론, 일상에서 민주주의 원리가 실천된다 한들 그것이 곧 모든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비민주적 국가도 경제적으로 번영할 수 있을지 모른다. 사실 군부독재 시기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높았다.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되는 사실은, 우리가 `군부독재를 했기 때문에`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원인과 결과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경제성장에는 여러 원인이 영향을 미쳤는데, 이러한 허위 인과로 사실을 호도함으로써 독재를 미화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많은 연구는 민주적이고 포용적인 나라가 경제적으로 번영험을 보여준다. 인터넷에 `남북한 야간 사진`을 검색해 보기 바란다. 민주주의를 실현한 남한은 밝게 빛나는 반면, 억압적 제도를 유지하는 북한은 여전히 어둡니다.


포용적이며 모든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정치 제도일수록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데 이롭고, 경제적인 성과로도 이어진다. 스스로가 주인으로서 가꾸는 꽃밭과, 누군가가 억지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가꾸는 꽃밭은 많은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기본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기본사회 운영을 위해 민주주의는 꼭 필요하다. 앞서 로크도 언급했지만, 근대 초기의 기본권은 신체의 자유와 재산권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던 기본권은 시민혁명을 거치며 참정권, 표현의 자유, 청구권 등으로 넓어졌고, 20세기에 들어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 이를 위해 필요한 교육과 건강, 노동을 보장받을 권리인 사회권으로 넓어졌다. 그래서 영국의 사회학자인 마설(T. H. Marchall)은 복지가 국가의 구제나 시혜가 아닌 시민권의 실천이라 보았다. 지금은 기후 위기가 현실화되며 환경권이 중요해지고, 반려동물과 생활하는 사람이 늘며 동물의 권리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사회 변화에 맞춰 과거에도 그랬듯, 기본권도 다시금 변하고 넓어질 것이다. 시대변화에 따라 기본권을 다시 정해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는 사회가 유지되려면, 비록 항상 우리가 신경써야 하고 손이 많이가는 시끌벅적한 제도이긴 하지만, 민주주의가 최선이다. . .


- 잘사니즘, 포용적 혁신성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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